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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엄마'와 영화 '닫힌 교문', 그리고 공교육
2007년 08월 22일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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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인 서상원(유준상 분)은 교문 앞에서 국사를 가르치던 김정호(최종률 분) 선생의 부당해고에 맞서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교실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어른들의 일로 혼란스럽다.

"누가 그러는데 김정호 선생님이 실력도 없고 돈도 막 챙기고 그래서 짤린 거라던데?" "야, 그게 말이 되냐! 그 얘길 누가 믿냐?" "맞어,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서 내 머리 안 때린 것도 김선생님 한 분 밖에 안 계셔!" "아마 학교에 밉보여서 짤린 걸거야." "정말?" "우리 형 다닐 때도 이런 일 있었어! 그때 우리 엄마가 하는 소리 들은 거 같애" "선생님들 불쌍하다" "그러게... 우리가 뭐 도울 방법 없을까?"



웅성거리던 아이들은 이내 교문 앞에서 외롭게 시위를 하고 있는 서상원에게 달려나간다. '담탱이'라는 속어로 자신의 담임교사를 낮춰 부르던 아이들은 "스승님이 가는 곳에 당연히 제자도 따라 붙어야죠"라며 서상원을 응원한다. 이윽고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앉아 주먹을 불끈 쥔 채 서상원과 학교를 향해 연좌시위를 벌인다. 21일 종영한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펼쳐진 한 장면이다.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가 있었다

1992년 노태우 정부시절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인문계고등학교의 비교육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학생과 교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미 입시교육과 권위주의교육의 폐해를 다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등의 영화가 개봉에도 불구하고 '닫힌 교문을 열며'는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다. 당시 사전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상영금지처분을 당해서다. 학생과 교사가 학교에 저항하며 데모를 획책(?)하는 모습은 당시 ‘빨갱이 영화’로 낙인찍히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닫힌 교문을 열며'는 교육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상영됐다. ‘왕의 남자’로 천만배우 대열에 합류한 정진영은 학교 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교사로 열연을 펼쳤다. 정진영이 학교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닫힌 교문 밖에서 비를 맞고 아이들을 바라보던 장면은 이후 여러 학원 드라마와 '투사부일체'같은 영화에서도 차용되며 한국의 비교육적인 교육현장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교육현실을 풍자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지난 6월 25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8월 21일 18부작으로 막을 내린 '강남엄마 따라잡기'(극본 김현희, 연출 홍창욱)는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로 전개된 드라마였다. 서울 강북에 살던 한민주(하희라 분)는 전교 1등을 자랑하는 자신의 아들 진우(맹세창 분)가 강남에서는 중간정도 성적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던 민주는 무리를 해서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진우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다. 그곳에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24시간을 헌신하는 강남엄마들이 있었고 민주는 강남엄마를 따라잡기 위해 좌충우돌, 고군분투한다는 것이 드라마의 기본 줄거리였다.

그러나 드라마는 단순히 강남엄마를 따라잡으려는 민주의 해프닝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강남엄마들의 치맛바람은 기본이고 이사장이 마음만 먹으면 전횡을 일삼을 수 있는 사학재단의 문제에서부터 최근 이슈가 된 학력위조까지 소재로 다뤘다. 교육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나름대로의 보수성(?)을 유지해오던 그간 공중파 드라마와 달리 입시에 대한 부담으로 자살하는 학생을 등장시켰고 자식의 사교육을 위해 노래방에서 낯선 남자들 앞에서 웃음을 파는 엄마의 모습을 그릴만큼 파격적이기도 했다.



방영초기 연출을 맡은 홍창욱PD는 강남과 비강남간의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비난에 대해 "강남엄마로 상징되는 사교육 열풍과 그에 따른 교육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해서 불가피 했다"고 답했다. 대본을 쓴 김현희 작가는 극중 나오는 파격적인 내용들이 취재를 통해 실제 우리 현실의 모습임을 강조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의 교육현장이 곪아있다고 주장했다.

담탱이가 스승으로 불리기까지

드라마는 애초 한민주, 윤수미를 비롯한 강남엄마들에 무게중심이 있었지만 차츰 진우의 담임 서상원(유준상 분)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서울대를 나와 대학시절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에도 성공한 서상원은 선배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다 첫 직장인 신문사에서 나오고 만다. 이후 백화점 문화강좌강사를 전전하던 서상원은 강남의 사립명문중학교인 최강중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부임하고 미처 몰랐던 공교육 몰락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보면서 가장 흥미를 느낀 캐릭터는 바로 서상원이었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드라마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서상원은 속물근성과 교사로서의 윤리의식 사이에서 늘 허둥거린다. 하지만 서상원은 선배교사이자 이 시대 스승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김정호를 보며 교직의 숭고함을 깨달아 간다. 이런 서상원의 변화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님 또한 그저 별다르지 않은 속물적인 어른일 뿐이라 생각하던 아이들은 차츰 서상원을 신뢰하게 되고 결국 마지막 회에서는 "담탱이"라 낮춰 부르던 호칭을 "스승"이라 바꿔 부른다. 지식 보다 중요한 삶의 태도를 서상원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공교육의 가치를 옹호하는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숨은 주제였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교육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21일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지난 시절 어렵게 봤던 '닫힌 교문을 열며'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만약 '닫힌 교문을 열며'가 만들어졌던 90년대 초반 중학생들이 담임선생의 1인 시위에 동참해 학교 운동장에서 연좌데모를 할 수 있는 드라마가 기획될 수나 있었을까?'는 생각도 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십수어년 만에 대한민국 사회는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소재의 제한이 없어졌다. 수많은 교사들의 해직을 야기했던 전교조 역시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 학부모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들이 회계장부를 근거로 사립학교 이사장과 담판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참여가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평교사 교장 공모제도 실시됐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처럼 2007년 대한민국 교실 안팎을 마치 풍속화처럼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과장도 있었고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정형화된 캐릭터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당대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교육문제를 학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 솔직하고 내숭 없이 직설적으로 다뤘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지닌 미덕이자 가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강남엄마 따라잡기'같은 교육풍자 드라마가 방영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보면서 유쾌했던 가운데 씁쓸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입시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은 줄어들지 않았고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은 날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공교육의 붕괴를 우려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그 문제의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이들아 아름답게 네 마음대로 피어라!

김현희 작가는 드라마 마지막 장면의 민주의 독백을 통해 소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지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얘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하나같이 다른 생김, 다른 성격,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이, 저 꽃봉우리들이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어찌됐든 아이들아, 꽃들아, 중간에 꺾이지 말고 시들지 말고 휘둘리지 말고, 너희가 갖고 있는 재주껏, 한껏, 아름답게 네 마음대로 피어라!"

결국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엄마들아 달라져라"는 당부로 끝을 맺었다. 그 말이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시청한 수많은 우리네 '엄마'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미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시대 부모들의 책임이자 풀어야 할 과제다.

/김용운기자 woo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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